위트 넘치는 19세기 사회개혁가의 밥상머리 일침!
"잡식성인 인간이 뭘 먹든 자유지만,
잠깐 생각은 해보고 먹자는 말씀이오."
채식을 당위적 윤리와 철학적 명제로 끌어올린 최초의 이론서!
모든 생명체는 공감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사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무엇을 먹어야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는 산업혁명으로부터 누적되어 온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가 숨어있다. 이후 모든 섭생 담론은 헨리 스티븐스 솔트의 원론에서 파생되었던 각론에 불과하다.
"신체적 구조나 인정 많은 본능 등을 고려할 때, 인간은 서로 잡아먹는 종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종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을 '맹수(beast of prey)'로 설정해 자연에 가장 큰 해악을 끼치고 있다." (p.57)
"고기를 많이 먹는 것이 잘 사는 표시이자 상징으로 간주되면서 크리스마스 명절을 보내는 영국식 방식이 되었다. 파라과이 식민지의 한 신문은 크리스마스 축하행사를 전하면서, '우리도 과식이라는 가장 성스러운 의식을 통해서 영어를 쓰는 세계 방방곡곡과 연결되었다'고 보도했다. 식민지와 본토 사이에 이 얼마나 '멋진' 도덕적 연방의 연대인가!" (p. 145)
120여 년 전의 말이 지금 우리시대에도 이렇게 참신하다는 게 놀랍고 당혹스럽다. 그동안 우리 인류는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오히려 뒷걸음질 쳐왔단 말인가? 이 책은 어떤 소설책보다도 흥미로운 전개로 우리의 생각을 들볶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서부터 초미세먼지까지 산업사회의 많은 문제가 결국은 먹는 것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만든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나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뒤 1884년까지 이튼스쿨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아내와 함께 런던 남부 틸포드(Tilford)에 있는 농가주택에서 직접 채소를 키우는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 40권의 저서를 남겼다. 첫 번째 저서가 《채식주의를 위한 청원》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젊어서부터 채식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채식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든 영국 <채식주의자협회Vegetarian Society>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철학자,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헨리 소로(Henry D. Thoreau)를 존경하여 그의 전기를 썼고, 이 전기 때문에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와도 친해지게 되었다. 솔트는 이론가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 사회개혁운동가였다. 생체해부 반대와 점진적인 사회주의운동에도 관심을 가졌고, “사회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동물과 인간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생명에 대해 인도주의적 유대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며 동물의 권리를 처음으로 주장 하였다.
1891년 <인도주의 연맹Humanitarian League>을 창립하여 인도주의 운동을 조직화하였다. 당대의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하디(Thomas Hardy),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 피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등과도 교류하였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나 이튼 스쿨과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 농가주택에서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채식주의'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든 영국 <채식주의자협회>의 회원으로 활동.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철학자,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헨리 소로의 전기를 썼고, 이 전기 때문에 마하트마 간다와도 친해짐. 솔트는 이론가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 사회개혁운동가로써, 생체해부 반대와 점진적 사회주의운동에도 노력. "사회의 진보라는 관점에서 모든 생명에 대해 인도주의적 유대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며 동물의 권리를 처음으로 주장.